마지막 순간---정호승
싸락눈 내리던 날 집을 나와
함박눈 내리는 날 집으로 돌아갔으나
집이 없다
집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돌아가셨다
집을 나오던 그때가 바로 마지막이었다
돌아가신 집을 다시 나왔다
함박눈은 계속 퍼붓고
아무 데도 갈 데가 없다
함박눈이 내리는 하늘의 길은 있어도
내가 가야 할 인간의 길은 없다
사람들은 모든 마지막 순간을
마지막 순간이 지난 다음에야 알아차린다
잠깐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서던
바로 그 순간이 마지막이었음을
잘 갔다 오라고 손을 흔들고
어깨에 쌓인 눈을 가볍게 털어주던
그때가 바로 마지막 순간이었음을
뒤늦게 알아차리고 눈을 감는다
꽃다운 청춘들의 죽음을 본다. “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서던 / 바로 그 순간이 마지막이었음을” 결코 알 수 없었으리라.
“사람들은 모든 마지막 순간을 / 마지막 순간이 지난 다음에야 알아차린다”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느낄 수는 있어도 볼 수는 없다. 마지막을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타인.
충격에 휩싸인 채 안타까운 죽음을 바라보면서 “잘 갔다 오라고 손을 흔들”던 아내의 얼굴이 스쳐간다. 어쩌면 우리는 매일 언제 올지 모를 마지막을 연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. [문철수 시인]